가장 젊은 순간으로써 대한민국 육군으로써 부대의 CERT병사로써 훈련소를 수료하는 마지막 전날 밤, 훈련소 동기들과 연등을 하였다 짧은 기간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을 다같이 회상하며 한마디씩 툭툭 뱉었다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들 서로에게 고마웠던 점들 함께했던 시간들을 리뷰했다 서로에게 한마디씩 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 순서가 되어서 갑자기 울컥하였다 정(情)보다는 이제 끝이라는 사실이 행복했고 군대에서 흘렸던 가장 기쁜 눈물이였다 이기적이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다른 동기가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었는데 "뭐든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였다 늘 나서서 무리할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고 건강하게 전역하는 걸 목표로 하자는 의미였다고 열심히 해줬어서 고마웠다고 했다 나는 조언의 뜻을 병장 1호봉에서..
dreamhack.io 의 reversing wargame을 풀다가 깨달았다 1001 1101 을 3만큼 왼쪽으로 rotation 연산을 하면 1110 1100 이 된다 1100 1001 을 4만큼 오른쪽으로 rotation 연산을 하면 1001 1100 이 된다 즉, shitf 연산과는 달리 1 또는 0이 밀려나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 만약 오른쪽을 rotation 연산을 할 경우의 값을 계산하게 된다면 이동할 만큼 오른쪽으로 shift을 하고, 8에서 이동할 만큼을 뺀 값을 왼쪽을 shift한 뒤에 그 두 값을 or 연산한다면 원하는 만큼 오른쪽으로 rotation한 값을 얻을 수 있다 1101 1010 을 오른쪽으로 3만큼 rotation 한다고 가정하자 오른쪽으로 3만큼 shift 연산하면 00..
'21. 10. 06 입대하고 휴가를 2번 밖에 못나갔는데 벌써 상병 4호봉이 되었다 어째 일병보다 더 빨리가는 것 같다 요즘 꿈에 집 현관문이 아른거려 싱숭생숭하다 # 근무 하나의 일상이 되버려서 아무런 생각도 없어졌다 9월 초에 한미연합훈련이 끝나고 10일간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이후로 고향으로 돌아온 것 마냥 삶이 익숙했다 PCR 공가로 인해 오전에 부대를 복귀하여 오후에 바로 출근을 했었는데 마치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 연차를 내고 다음날 다시 출근을 한 기분이였다 (참고로 직장을 다녀본 적은 없다 ㅎ) 마치 매일 양치를 하는 것처럼 출근을 하여 일을 하고 퇴근했다 이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흥이 없어졌고 간부님들이 유선상으로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이전 만큼의 정신적 타격은 없어졌다 요즘은 오히려..
'21. 08. 02 일병에서 상병이된지 2달이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게 벌써부터 무섭다 # 근무 일병이랑 다를게 없지만 상병은 있어보여! 전입온지 8달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업무가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배울땐 이걸 언제 다 배우나 했지만 지금은 어떤 우발상황이 일어나도 침착하게 해결해가고 있다 누군가가 잘못 처리해도 누군가가 안된다고 화를 내도 누군가가 문제가 생겨 당황하더라도 이젠 "또 저러네" 하며 처리한다 일을 처리하다보니 나만의 대처능력이 생겼는데, 1. 문제가 생기면 기초적이고 물리적인 환경부터 점검하자 ex) 네트워크가 안된다고 하면 랜선이 꽂혀있는지부터 확인해보자... 2. 섣불리 판단하고 말하지 말자 ex) 내가 하는 한마디가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모르니 주의하자... ..
'21. 05. 07 입대한지 7개월이 지나 일병 5호봉이 되었다 업무에 익숙해지고 생활에 적응이되자 이런 글도 올려본다 # 근무 주간은 전화 데이트 (보안 USB들 다 뽀시고 싶다) 야간은 로그 데이트 (제발 오늘만은 아무일 없기를) 내가 속해있는 부대에서 처리해야할 업무는 전입 4개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익숙해졌다 (일이 터져도 당황하지 않고 처리가능할 정도) 주요 업무는 관제에 두고 분석과 대응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관제는 낮이든 밤이든 필히 이루어진다 예로 바이러스를 탐지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IP를 이용해 사용자를 추적하고 원격으로 망(network)을 분리한 뒤 사용자에게 연락을 취해 PC 제출을 요구한다 이후 바이러스 채증을 한 뒤 상급부대에 보고한다 이외에 비관리노드 탐지, 작전훈련 등과 ..
'20. 12. 22 ~ '20. 12. 31 선발인원이 적은 정보보호병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글로 남겨본다 훈련소와 후반기 교육 + 격리사건으로 인해 나의 이등별 생활은 거의 기억이 없다 # 생활 동기들과 생활하던 훈련소에서 선임들과 함께 생활하는 자대에 가게되어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후반기 교육(병장체험기)을 수료하고나니 더욱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1. '~다' 또는 '~까' 로 말하기 훈련소나 후반기에서 '네'로 답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여기선 '그렇습니다' 로 답한다 2. 선임병사 볼때마다 인사드리기 내가 이렇게 인사성이 밝은 아이인줄 몰랐다 만날땐 '수고하십니다' 떠날땐 '수고하십쇼' 3. ??? 행운을 빈다 생활관별로 특색있는 신병신고식이 존재한다 부디 살아남길 ..